한비자(韓非子)의 철학

2023. 1. 22. 00:27선현의 지혜

<한비자의 철학 -법가 사상- 은 진시황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 본분을 굳게 지키라

옛날 한나라의 소왕이 얕은 잠을 자고 있었다.
관(冠)을 관리하는 관관(冠官)이 이를 보고 임금이 추울까 봐 염려하여 옷을 덮어 주었다.
임금이 자리에서 일어나 좌우에 있는 신하에게 물었다.

"누가 나에게 옷을 덮어 주었는가?"
"관관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옷을 관리하는 의관과 관관 두 사람을 모두 처벌하였다.

의관을 처벌한 것은 그 맡은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며, 관관을 처벌한 것은 자기가 맡은 직무 이상의 일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추위가 싫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의 직무에까지 손을 대는 피해는 추위보다 더 극심하다는 생각에서 처벌한 것이다.

그러므로 명석한 임금이 신하를 양성할 때, 신하가 맡은 직무 이상의 일에 손을 써 공을 세우는 일은 허용하지 않는다. 의견을 말해 놓고 그 행동이 걸맞지 않은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직무 이상의 일에 월권하면 사형에 처하고, 말과 행동이 걸맞지 않으면 벌을 준다. 관리가 직무에 상응하는 일에 힘쓰고 진언에 걸맞은 성과를 올리게 된다면, 신하들은 붕당을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 사람은 이익을 좇아 행동한다

왕량은 말을 사랑했고, 월나라 임금 구천은 사람을 사랑했다.

사람을 사랑한 것은 전쟁에 쓰기 위함이고, 말을 사랑한 것은 타고 다니기 위해서였다.

의사가 남의 상처를 빨고 남의 나쁜 피를 머금는 것은 혈육의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수레를 만들 때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棺)을 만드는 사람은 관을 만들 때 모든 사람이 일찍 죽기를 바란다. 그것은 수레 만드는 사람은 자애심이 깊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천성이 잔혹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부귀하지 않으면 수레가 잘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관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즉 마음속으로 남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죽음에 의해서 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왕후나 후궁과 태자 등이 임금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임금이 죽지 않으면 자기들에게 권력이 넘어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임금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임금의 죽음으로 이익이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금은, 자기가 죽으면 이익이 돌아가는 사람을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햇무리와 달무리는 비록 바깥쪽에 있지만, 그 햇무리와 달무리를 조성하는 근원은 내부에 있다. 늘 조심하더라도 재앙은 항상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 성인에게는 치욕이 없다

 

월나라 임금 구천은 오나라와 싸워 패하자, 오나라 조정에 들어가 부차를 신하의 예로써 섬겼다.

임금인 부차가 외출할 때면 스스로 창과 방패를 들고 호위를 하면서 충실한 개 노릇을 하였기 때문에, 나중에 고소에서 부차를 죽이고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또 주나라 문왕은 옥에 갇혀 주왕으로부터 조롱을 당하였으나 태연한 표정으로 대응하여, 훗날 그의 아들 무왕이 목야의 싸움에서 주왕을 쳐서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노자가 말한 대로, "유약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참으로 굳센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월나라 구천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인 문왕이 조롱을 참아 냈기 때문이다.

 

노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성인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니, 그것은 괴롭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상처가 없는 것이다"

 

 

○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강하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동문인 증자를 만나서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찌하여 그토록 살이 쪘는가?"


증자가 대답했다. "싸움에 이겼기 때문이네" 

"그게 무슨 말인가?"


증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집 안에 들어앉아 책을 읽을 때는 선현의 말씀을 흠모하며 그것을 영광으로 여겼는데, 밖에 나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을 볼 때는 그것을 동경하게 되었다네. 이 두 가지 상념이 내 마음속에서 서로 싸우며 승부를 가리지 못해 몸이 몹시 야위었지. 그리고 지금은 선현의 도가 이겼기 때문에 이렇게 살이 찐 것이라네"

이러한 까닭에, 뜻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은 남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굳세다고 말한다"라고 하였다.

 

 

○ 늙은 말이 길을 잘 안다

제나라 관중은 습붕과 함께 환공을 따라 고죽이라는 나라를 정벌하였다.

 

봄에 출발하여 겨울에 돌아오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에 관중이 말하였다.
"이럴 때는 늙은 말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늙은 말을 풀어주고 그 뒤를 따라갔더니, 과연 잃었던 길을 찾게 되었다.

또 한 번은 산속을 가는데, 물이 없어 곤란하게 되었다. 그때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 동안 양지바른 남쪽에 살고, 여름에는 그늘진 북쪽에 삽니다. 개미집에서 한 치 높은 곳 밑으로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습니다"
곧 땅을 파니, 정말 물이 있어 갈증을 면할 수 있었다.

관중과 같이 사리에 밝은 사람과 습붕과 같이 슬기로운 사람도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늙은 말이나 개미를 스승으로 삼았다.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고 성인들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을 줄 모르니, 이 또한 허물이 아니겠는가?

 

 

○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다

 

공의휴는 노나라 재상이었다.

그가 물고기를 매우 즐겼기 때문에 온 나라 사람들이 다투어 물고기를 바쳤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이를 본 그의 아우가 말했다.

"형님께서는 물고기를 좋아하시면서 왜 받지 않으십니까?"

 

"물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은 것이다. 만약 내가 물고기를 받는다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해야 하고, 고개를 숙이게 되면 결국 법을 어기게 된다. 법을 어기게 되면 재상의 자리를 잃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실컷 먹을 수 없게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지금 물고기를 받지 않는다면 재상의 자리를 유지할 것이고, 그러면 언제라도 물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남을 의지하는 것이 스스로를 믿는 것에 미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주는 것이 내가 나를 위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