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2023. 2. 14. 23:01생활의 지혜

모든 관계는 내 안에서 별을 이룬다

 

타인에게 다가서는 건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에게 할 말이 없어졌고, 그들의 말도 내 밖을 떠돌았다.

사소한 고리로 이어지는 것마저 나는 버거워했다.

 

만약 네가 짐승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면

너는 그들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네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파괴한다.

 

타인에 대한 공포. 어쩌면 그것은 처음부터 내 마음 속에만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말을 걸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와 관계 맺지 않았기에, 오해와 의심은 나의 내면을 잠식했다. 

그렇게 나는 더럽혀진 심연의 대지를 홀로 배회했던 것이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내 곁의 사소한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동료들이라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해주었지만,

이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만큼 우리가 성숙했을 때, 그들은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은 가고, 우리는 배회하고,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워져,

아쉬움과 안타까움만을 남긴 채 삶은 침묵을 향해 저물어간다.

삶이 비극인 이유는 온전히 시간 때문이다.

타인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을 무렵, 우리는 동시에 이별을 맞이해야만 한다.

 

 

만약 네가 짐승들에게 말을 건다면

짐승들도 너에게 말을 걸 것이다.

그러면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침략자들에 의해 인디언이라 불렸던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은 우리에게 다가서라고 말한다.

겁내지 마라. 두려워 마라. 네 앞에 선 타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라.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라질 것이고, 서로를 알아갈 시간은 지금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생의 여정 중에 반드시, 관계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내가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내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왜냐하면 타인과 세계의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거기에 비친 자아의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심오한 물음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해답은 자기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뜻하지 않게 던져진 이 세계와, 이곳에서 우연처럼 만나 손잡은 타인들로부터 우리는 천천히 해답에 다가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알게 될 것이다. 그토록 두렵던 타인이 닿을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기다려준 존재이고,

타인으로 가득찬 이 세계가 사실은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었음을.

 

이 책이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떄문이다.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관계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 타인을 만나고, 세계와 재회하기 위해. 

 

우리는 관계에 대한 네 가지 장을 살펴본다. [타인], [세계], [도구], [의미].

우선 [타인]에서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다룬다.

삶의 중간에서 선물처럼 만나게 되는 이들이 자아에게 어떤 흔적과 이야기를 남기는지 살펴본다.

[세계]에서는 '나와 세계'의 관계를 다룬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던져진 이 세계에서 자아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해나가는지 알아본다.

[도구]에서는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들을 다룬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타인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재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특성과 언어에 대해서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의미]에서는 '죽음'을 다룬다.

죽음 역시 하나의 관계 방식이다. 그것은 자아와 부재와의 관계다.

죽음이라는 독특한 사건이 자아와, 타인과, 세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다.

 

40개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연애, 이별, 인생, 시간, 통증, 언어, 꿈, 죽음, 의식 등.

각각의 이야기는 마치 멀리 떨어진 섬처럼 독립되어 보이지만 전체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난 후에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수면 밑으로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40개의 철학적 수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관계'라는 거대한 주제로 수렴해간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닿은 그 어떤 사소한 인연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서 언젠가 만나 당신과 나의 내면을 깊고 아름답게 키워낼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 그들을 향해 손 내밀 준비를 마친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읽기 전에

 

바다 위에 흩어진 섬들에 번호를 붙이는 것이 의미 없는 행위이듯,

이 책의 독립된 이야기들에도 순서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작가의 의도대로 차례차례 읽는 것도 좋고, 자신의 관심을 끄는 편부터 읽는 것도 괜찮다.

 

다만 당신이 40개의 섬을 여행하듯 이 책을 읽으며 자유롭기를 바란다.

이곳에는 작은 섬도 있고, 큰 섬도 있다. 공부를 하겠다거나 목표로 삼은 분량만큼의 독서를 하겠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오지를 탐험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가볍게 이 바다를 떠돌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섬을 둘러보았을 때는

당신의 마음 안에서 분절된 섬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하나의 바다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모든 섬이 언제나 바다의 심연에서 만나듯,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당신의 마음 안에서 서로 관계 맺고,

언젠가는 하나로 만나게 될 것이다.

 

 

타인

 

별에 대하여 - 모든 지식은 언젠가 만난다.

관계에 대하여 - 우리는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가

이별에 대하여 - 사랑은 떠나고 세계는 남는다

연애에 대하여 -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울어본 적 있는가

흔적에 대하여 - 그에게는 오카리나가 남았다

 

소년병이야기 1. - 맑은 겨울 아침, 그는 떠난다고 말했다.

소년병이야기 2. - 떠난 후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소년병이야기 3. - 다른 시간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만날 수 없다.

소년병이야기 4. - 매듭을 이어 고리를 만들다.

소년병이야기 5. - 봄, 그들은 언젠가 만날 것이다.

 

세계

 

인생에 대하여 - 여행할 시간 30년이 주어진다면

노력에 대하여 - 열심히 살아도 괜찮은가

개에 대하여 - 세상은 왜 새롭고 아름다운가

던져진 세계에 대하여 - 왜 나는 나에게 집착하는가

시간에 대하여 - 부재를 사는 사람 존재를 사는 사람

나의 이야기 1. - 현실에서 부유하는 사람들

나의 이야기 2. - 현실의 순례자들

나의 이야기 3. - 삶을 움켜쥐고 싶을 때 만다라를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 4. - 끝의 끝에는 시작이 있다.

나의 이야기 5. - 우리는 떠날 때에야 비로소 정착한다.

 

도구

 

통증에 대하여 - 모든 관계는 통증이다.

이야기에 대하여 - 세계와 나를 맺어주는 도구

믿음에 대하여 - 낡은 벤치를 지키는 두 명의 군인 이야기

진리에 대하여 - 진리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현실에 대하여 - 자본주의가 빼앗아가는 것들

언어에 대하여 1. - 언어의 두 가지  방향

언어에 대하여 2. - 시를 쓴다는 것

언어에 대하여 3. - 책을 읽는다는 것

언어에 대하여 4. - 타인의 말

언어에 대하여 5. - 내면의 말

 

의미

 

꿈에 대하여 - 꿈이 삶을 가르친다.

죽음에 대하여 - 상실과 소멸이 우리를 일으켜준다.

노화에 대하여 - 죽음이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

환생에 대하여 - 팔라우의 해파리로 산다는 것

영원에 대하여 - 끝나지 않을 노래를 부른다는 것

결론을 향하여 1. -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결론을 향하여 2. - 나는 누구인가

결론을 향하여 3. - 세계란 무엇인가

결론을 향하여 4. -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결론을 향하여 5. - 자기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수많은 존재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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